2016년 7월 17일 일요일

'고스트버스터즈', 예고편에 실망했으나 영화 끝나고 웃으며 나왔다

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 중에 '고스트버스터즈(Ghostbusters)'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고스트바스타'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을 때 무척 재밌게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레이 파커 주니어(Ray Parker Jr.)가 부른 메인 타이틀 곡을 낮이나 밤이나 틀어놨던 기억도 난다. 80년대 말 2탄이 개봉했을 때에도 영화관으로 부리나케 뛰어갔었다. 요즘에도 유명한 '고스트버스터즈' 로고를 보면 그 때 그 시절 추억이 바로 되살아날 정도로 '고스트버스터즈'는 80년대 추억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바로 그 '고스트버스터즈'가 돌아왔다. 3탄 제작설이 꾸준히 나돌았으나 메인 캐릭터 전원을 모두 여성으로 바꿔 시리즈를 리부트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 2016년 여름 영화관으로 돌아왔다.

'고스트버스터즈 2016'엔 멜리사 매커시(Melissa McCarthy), 크리스틴 위그(Kristen Wiig), 케이트 매키넌(Kate McKinnon), 레슬리 존스(Leslie Jones)가 4명의 고스트버스터즈 팀으로 출연했다. 이밖에 크리스 헴스워스(Chris Hemsworth), 닐 케이시(Neil Casey) 등이 출연했으며, 80년대 '고스트버스터즈' 시리즈에 출연했던 빌 머레이(Bill Murray), 댄 애크로이드(Dan Aykroid), 어니 허드슨(Ernie Hudson), 시고니 위버(Sigourney Weaver), 애니 파츠(Annie Potts) 등도 카메오로 출연했다. 크리스 헴스워스는 '고스트버스터즈' 오피스의 접수 담당 케빈 역을 맡았고, 닐 케이시는 악역 로완 역을 맡았다.

연출은 여성 코미디 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폴 피그(Paul Feig)가 맡았다.

'고스트버스터즈 2016' 줄거리는 간단하다. 초자연 현상에 관심이 많은 과학자 애비(멜리사 매커시), 에린(크리스틴 위그), 질리언(케이트 매키넌)과 유령을 목격한 패티(레슬리 존스)가 유령 존재 사실을 세상에 입증해 보이면서 유령을 퇴치하는 '고스트버스터즈' 팀을 만들어가는 사이 사회에 불만이 많은 호텔 직원 로완(닐 케이시)이 유령들을 소환하는 장치를 개발해 세상을 종말로 몰고가려는 음모를 저지한다는 줄거리다.


소니 픽쳐스가 새로운 '고스트버스터즈' 영화를 준비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을 때 걱정과 기대가 교차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고스트버스터즈'가 묵혀두기 아까운 프랜챠이스라는 건 알겠는데, 실망스러운 속편이나 리부트를 내놓으면서 80년대 클래식 '고스트버스터즈'에 대한 좋은 기억까지 다 말아먹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보인 사람들이 많았다. 클래식 영화 리부트 또는 리메이크작의 거의 대부분이 기대에 크게 못미치는 실망스러운 수준에 그쳤기 때문에 "쓸데 없는 리부트/리메이크로 먹칠하지 말고 클래식 영화를 그대로 내버려두라"고 요구하는 영화팬들이 늘고있다.

특히 '고스트버스터즈'처럼 유명한 영화의 속편이 제작되거나 리부트, 리메이크가 나온다고 하면 "브랜드 가치에만 전적으로 의존한 시시한 영화일 것"으로 지레 짐작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경우를 자주 봐왔기 때문이다. 헐리우드가 속편, 리부트, 리메이크작을 자주 내놓는 이유로 "아이디어 고갈", "유명 브랜드가 잘 팔리는 해외 신흥시장용으로 준비한 것", "클래식 영화를 기억하지 못하는 밀레니얼(Millennial) 세대에게 다시 울궈먹기 위한 것" 등이 꼽히고 있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이런 헐리우드 트렌드에 염증이 난 관객들이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클래식 헐리우드 영화를 기억하는 성인 관객들은 울궈먹기로 보이는 리부트/리메이크작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으며, 클래식 영화를 기억하지 못하는 밀레니얼 세대 관객들도 "홈 비디오 덕분에 어지간한 클래식 헐리우드 영화는 다 안다"면서 마찬가지로 리부트/리메이크작에 지겹다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 세대를 불문하고 신선하지 않은 속편, 리부트, 리메이크에 부정적인 영화 관객들이 많은 것이다. 특히 오래 전부터 헐리우드 영화에 친숙한 북미, 서유럽 쪽에서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고스트버스터즈 2016'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사람들이 많았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소니 픽쳐스가 유투브를 통해 공개한 첫 번째 '고스트버스터즈 2016' 예고편이 기록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얻으며 불길한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스트버스터즈 2016' 예고편은 한마디로 재앙 수준이었다. 예고편이 큰 실망감을 주는 역할만 했을 뿐 기대가 되도록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고편에 나온 유머와 비쥬얼 모두 크게 실망스러웠다. 예고편은 영화가 재밌게 보이고 기대감이 들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고스트버스터즈 2016' 예고편은 거꾸로 영화가 재미없어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고스트버스터즈 2016' 출연진과 영화감독은 예고편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고스트버스터즈 멤버를 여성으로 바꾼 게 불만인 팬보이 성차별자들의 반발"로 몰고갔다. 물론 여성 멤버로 바뀐 것이 가장 큰 불만인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리부트/리메이크 자체를 못마땅해 하거나 한심한 예고편에 실망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고스트버스터즈 2016' 출연진과 영화감독은 예고편의 부정적인 반응을 성차별로 몰고가는 정치적인 수법을 사용했다. 영화와 예고편에 대한 순수한 비판도 모두 싸잡아서 성차별로 매도했으며, 리버럴 성향의 언론과 헐리우드 매체들은 '고스트버스터즈 2016'의 보호막 역할을 맡았다. '고스트버스터즈 2016' 측의 '성차별' 대응은 불필요한 잡음을 더욱 키우는 역효과를 낳았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들을 성차별자로 몰아세우면서 '적'을 더 만든 것이다. 걸핏하면 "성차별", "인종차별"을 들먹이는 데 넌더리가 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데, 이들을 상대로 싸움을 건 꼴이 됐다. 그러자 '고스트버스터즈 2016'이 흥행참패하기를 학수고대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고스트버스터즈 2016'에 분노(?)한 일부는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고스트버스터즈 2016' 관련 상품들이 정리 세일 코너에 걸렸다"며 미국의 한 상점(타겟)에서 촬영한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어쩌면 '고스트버스터즈 2016'은 영화 밖에서 생긴 사건이 더 재밌었던 영화로 기억될지 모른다.

[관련 포스팅]


개봉하기 전부터 이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고스트버스터즈 2016'이 드디어 미국서 개봉했다.

과연 어땠을까?

예고편을 보고 느꼈던 것처럼 대재앙 수준이었을까?

어렸을 때 재밌게 본 80년대 '고스트버스터즈'의 추억이 무참히 훼손될 정도였을까?


욕을 산더미처럼 할 준비를 하고 사무라이 표정으로 칼을 갈면서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까지 "건드리면 다 죽어" 눈빛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제법 볼 만했다. 대단한 정도는 물론 아니었지만 예고편을 보고 느꼈던 것처럼 대재앙 수준은 아니었다. 레이 파커 주니어가 부른 너무나도 친숙한 1984년 '고스트버스터즈' 주제곡으로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엔드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별다른 문제 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고스트버스터즈 여성 멤버들도 크게 방해되지 않았다. 새로운 '고스트버스터즈' 영화를 또 만들 것이라면 3탄을 제작하는 것보다 여성 멤버로 변화를 주는 쪽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영화를 보면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게 아닌가 걱정했으나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새로운 고스트버스터즈 역을 맡은 4명의 여배우 모두 제 몫을 잘 해냈다. 80년대 오리지날 멤버를 기억에서 지울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길 정도는 물론 아니었지만, 어딘가 어색하고 난장판인 듯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 정도면 성공적으로 데뷔했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역시 가장 실망스러웠던 건 스토리였다.

'고스트버스터즈 2016'는 1984년 개봉한 '고스트버스터즈'의 줄거리와 비슷하게 겹치는 듯 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줄거리였다. 클래식 '고스트버스터즈'와 겹치는 파트까지는 문제될 게 없었다. 낯익은 설정이 나올 것으로 어느 정도 예상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머지 파트였다. "사회에 불만이 많은 악당이 유령을 소환하는 장치를 개발해 세계 종말을 계획한다"는 플롯은 영 맘에 들지 않았다. 악당을 잡귀나 악마로 하지 않고 '테러리스트'로 설정한 게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요즘 들어 테러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한다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고스트버스터즈' 영화에까지 테러리스트가 등장할 필요는 없었다. 테러리즘과 초자연 현상을 한데 묶은 시시껄렁한 플롯 말고 좀 더 그럴듯한 아이디어가 없었는지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이런 영화에 대단히 심오한 줄거리를 기대한 건 물론 아니지만, 이것보다는 나은 아이디어가 없었는지 묻고 싶다.

줄거리가 '유령 폭탄 테러'로 기울면서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유치한 특수효과로 얼룩졌다. 스토리부터 이상해진 데다 우스꽝스러운 CGI 유령들까지 무더기로 등장하면서 잘 나가던 분위기를 망쳤다. CGI 특수효과에 환장한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런 류의 영화는 CGI 특수효과로 볼거리를 어느 정도 제공해야 한다는 건 이해하지만, '고스트버스터즈 2016'의 경우는 "눈요깃 거리"가 아니라 "눈버릴 거리"에 그쳤다. 다른 건 다 이해하고 넘어간다고 해도 '고스트버스터즈 2016'의 마지막 파트 만큼은 실망스러웠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운드트랙도 썩 맘에 들지 않았다. 메인 타이틀 씬에 레이 파커 주니어가 부른 1984년 오리지날 주제곡을 사용한 것까진 아주 맘에 들었으나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엘머 번스타인(Elmer Bernstein)이 작곡한 1984년 '고스트버스터즈' 메인 타이틀 테마가 2016년판에 사용되지 않은 것도 섭섭했다. '맨 오브 스틸(Man of Steel)'에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가 작곡한 수퍼맨 테마가 나오지 않아 섭섭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레이  파커 주니어가 부른 주제곡 못지 않게 엘머 번스타인의 메인 타이틀 테마도 기억에 남는 80년대 영화음악 중 하나인데, 번스타인의 메인 타이틀 테마는 2016년 영화로 돌아오지 않았다.

최근에 발매된 '고스트버스터즈 2016' 사운드트랙 앨범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사운드트랙 수록곡 14 곡 중 무려 4 곡이 '고스트버스터즈'였다. 그 중 하나는 레이 파커 주니어가 부른 오리지날 버전이고 나머지 세 곡은 새로운 가수들이 부른 뉴 버전이었다. 유명한 '고스트버스터즈' 주제곡을 여러 가수들이 돌려가며 부르며 울궈먹은 게 전부였다. '고스트버스터즈' 주제곡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 주제곡 중 하나로 꼽히는 만큼 2016년 뉴 버전은 어떨지 기대했었으나 새로운 '고스트버스터즈' 주제곡들은 모두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Elle King의 'Good Girls', Wolf Alice의 'Ghoster', Mark Ronson, Passion Pit & A$AP Ferg의 'Get Ghost' 등 다른 수록곡 중엔 그런대로 들을 만한 곡들이 있었다. 그러나 1984년 영화 사운드트랙처럼 'Cleanin' Up the Town', 'Savin' the Day' 등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한 곡은 없었다.

그렇다. '고스트버스터즈 2016'에도 맘에 들지 않는 점들이 많았다. 하지만 영화 상영이 끝난 뒤 웃으면서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참기 어려운 상당히 괴로운 시간을 보낼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렇지 않았다. 도저히 못보겠다는 생각이 불끈불끈 솟구칠 정도로 대재앙 수준의 험악한 영화가 아니었다. 아주 만족스럽진 않았어도 기대 이상으로 볼 만했다.

그 정도면 됐다.

댓글 2개 :

  1. 저랑 음악 취향도 비슷하시고.. 영화까지.. 가끔씩 들립니다. 잘 보고 있습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