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24일 목요일

'블랙 매스', 최근에 나온 쟈니 뎁 영화 중 최고

최근 들어 "쟈니 뎁(Johnny Depp)"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캐리비언의 해적들(Pirates of the Caribbean)'이고 다른 하나는 '흥행실패작'이다. 쟈니 뎁이 디즈니의 판타지 블록버스터 '캐리비언의 해적들' 시리즈에 출연한 걸로 유명하지만  '캐리비언의 해적들' 이외의 뎁이 최근에 출연한 영화 중 여러 편이 흥행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론 레인저(The Lone Ranger)', '트렌센던스(Transcendence)', '모데카이(Mortdecai)' 등을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미국서 최근에 개봉한 쟈니 뎁의 신작 '블랙 매스(Black Mass)'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매우 생소한 모습으로 분장한 쟈니 뎁의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쟈니 뎁이 보스턴의 악명 높은 아일랜드 갱 두목 제임스 "화이티" 벌저(James "Whitey" Bulger) 역을?

쟈니 뎁이 제임스 벌저 역을 맡았다는 게 약간 의외이긴 해도 '블랙 매스'의 출연진은 화려한 편이다. 쟈니 뎁 뿐만 아니라 조엘 에저튼(Joel Edgerton), 베네딕트 컴버배치(Benedict Cumberbatch), 케빈 베이컨(Kevin Bacon), 다코타 존슨(Dakota Johnson) 등 낯익은 배우들이 여럿 출연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제임스 벌저의 친동생이자 매세추세츠 주 민주당 상원의원이던 윌리엄 벌저(William Bulger) 역을 맡았으며, 조엘 에저튼은 제임스, 윌리엄 벌저 형제와 어렸을 적부터 알고지낸 FBI 에이전트 존 코널리(John Connolly) 역을 맡았다.

연출은 '크레이지 하트(Crazy Heart)'와 '아웃 오브 퍼니스(Out of the Furnace)' 등을 연출한 미국 영화감독 스캇 쿠퍼(Scott Cooper)가 맡았다.

그렇다면 보스턴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을 기반으로 한 제임스 벌저 바이오픽, '블랙 매스'의 줄거리를 살짝 훓어보기로 하자.

1970년대 중반 보스턴에서 이탈리안 갱을 추적하던 FBI 에이전트 존 코널리(조엘 에저튼)는 이탈리안 갱과 경쟁하며 사우스 보스턴에서 활동하던 아일랜드 갱 두목 제임스 벌저(쟈니 뎁)에 접근해 벌저에게 FBI의 정보원이 되어 함께 이탈리안 갱을 소탕하자고 제의한다. 벌저가 이를 받아들이자 코널리는 FBI가 벌저를 정보원으로써 보호해주는 대신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조건을 단다. 그러나 벌저는 FBI의 보호 뒤에 숨어 계속 범죄를 저지르면서 벌저와 코널리의 파트너 관계가 애매해지기 시작한다...


쟈니 뎁이 실제로 존재했던 갱스터 역을 맡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 영화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ies)'에서도 30년대 미국 갱스터 존 딜린저(John Dillinger) 역으로 출연한 바 있다. 그러나 '퍼블릭 에너미'는 이번 '블랙 매스' 못지 않게 출연진은 화려했으나 영화 자체는 과히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번 '블랙 매스'는 어땠을까?

첫 번째 '블랙 매스' 스틸이 공개되었을 때부터 가장 시선을 사로잡았던 건 뭐니뭐니 해도 쟈니 뎁이었다. 캡틴 스패로우를 비롯해 이상한 캐릭터로 분장한 쟈니 뎁의 모습에 익숙해진 편이었지만 '블랙 매스'에서 제임스 벌져로 분장한 쟈니 뎁의 모습은 과거와 달랐다. 이번엔 우스꽝스럽게 과장된 캐릭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리비언의 해적들' 시리즈 덕분으로 코미디 배우 이미지가 워낙 강해진 바람에 진지한 갱 두목으로 변신한 쟈니 뎁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궁금했다. 최근 들어 뎁이 맡았던 대부분의 역할이 코믹한 캐릭터였다는 점도 신경쓰였다.

쟈니 뎁에게 제임스 벌저 역을 맡긴 게 올바른 선택이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서로 닮은 구석이 많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눈 색깔과 헤어스타일 등을 바꾸며 제임스 벌저로 분장한 쟈니 뎁으로 시선을 사로잡으려는 게 사실상 전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어색함은 영화를 보면서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했다. 쟈니 뎁을 제임스 벌저로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크게 방해가 되지 않았다. 최근 들어 실망스러운 영화에 잇따라 출연하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던 쟈니 뎁은 '블랙 매스'에서 오랜만에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쟈니 뎁을 제임스 벌저 역으로 캐스팅했다는 점은 여전히 맘에 들지 않았지만, 최근에 나온 쟈니 뎁 영화 중엔 '블랙 매스'가 최고였다.

스토리도 기대 이상으로 흥미진진했다. 수많은 마피아 영화 등으로 범죄-갱스터 영화에 이미 단련된 상태라서 갱스터 영화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블랙 매스'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지루할 틈 없이 즐길 수 있었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 FBI와 제임스 벌저의 파트너쉽이 점점 애매해지는 과정 등이 흥미진진했다. 유머도 빼놓지 않았다. 유머와는 거리가 있는 어둡고 따분한 영화로 보였으므로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벌저(쟈니 뎁)가 그의 어린 아들과 코믹한 대화를 진지하게 나누는 씬 등 코믹한 씬도 더러 눈에 띄었다. '블랙 매스'는 쟈니 뎁의 코믹 이미지와 반대되는 진지한 톤의 영화였으나 그렇다고 유머가 완전히 매마른 삭막한 영화는 아니었다.

이처럼 '블랙 매스'는 볼 만한 범죄영화였다. 제임스 벌저로 분장한 쟈니 뎁의 모습 하나를 빼면 볼 것 없는 영화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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