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0일 수요일

만약 주디 덴치의 M이 살아있다면...?

2015년 11월 개봉하는 007 시리즈 24탄 '스펙터(SPECTRE)'엔 영국 여배우 주디 덴치(Judi Dench)가 나오지 않는다. 2012년 영화 '스카이폴(Skyfall)'에서 그녀의 캐릭터가 죽었기 때문이다.

피어스 브로스난(Pierce Brosnan)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였던 1995년작 '골든아이(GoldenEye)'서부터 2012년작 '스카이폴'까지 일곱 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M으로 출연했던 주디 덴치는 그녀의 캐릭터가 '스카이폴'에서 죽게 된다는 소식을 007 제작진으로부터 전해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영국 라디오 타임스가 전했다.

“They told me gently and I laughed through my tears,” - Judi Dench


주디 덴치가 1934년생인 점을 감안하면 007 제작진이 M을 젊은 배우로 교체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M을 굳이 영화에서 죽일 필요가 있었냐는 데서 의견이 갈린다. 과히 나쁜 아이디어는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드라마틱한 엔딩을 연출하기 위해 집어넣은 불필요한 씬으로 보이기도 했다.

굉장히 쇼킹한 소식도 아니었다. 스카이폴' 개봉 이전부터 M이 교체된다는 징후가 포착되었으므로 '어떤 방법으로 교체할 것인가'를 미리 상상해 본 본드팬들은 'M 사망 옵션'을 그 중 하나로 꼽고 있었기 때문이다. 덴치가 고령이라서 007 시리즈를 떠날 때가 다가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던 만큼 덴치의 마지막을 '은퇴'로 장식할 것인지 아니면 '죽음'으로 막을 내릴 것인지에 대해 007 제작진이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 분명하므로 본드팬들도 여러 가지의 '주디 덴치 퇴장 씨나리오'를 상상해봤던 것이다. 따라서 'M의 죽음'은 본드팬들에겐 충격적인 소식이 아니었다.

많은 본드팬들은 '본드24'에서 주디 덴치의 M을 추억하는 씬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얼마 전 영화감독 샘 멘데스(Sam Mendes)가 찰리 로스(Charlie Rose)와의 인터뷰에서 '본드24'에 대한 정보를 살짝 흘리면서 "줄거리는 이어지지 않지만 캐릭터의 세계는 이어진다"고 밝혔던 것을 힌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007 제작진이 공개한 첫 번째 '007 스펙터' 촬영 세트 포토를 보면 '스카이폴'에 등장했던 블독 피겨린이 데스크에 놓여있는 것이 보인다. 아래 이미지의 우측 상단에 있는 로열 덜튼(Royal Doulton)의 블독 피겨린은 '스카이폴'에서 M(주디 덴치)의 데스크에 놓여있었던 것으로,  '스펙터'에선 본드의 데스크에 놓여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스펙터'에 본드의 데스크와 사무실이 나오는 걸까?

만약 '스펙터'에 본드의 데스크과 사무실 씬이 나온다면 조지 레이전비(George Lazenby) 주연의 1969년작 '여왕폐하의 007(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 이후 처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왕폐하의 007'의 본드의 데스크 씬에서도 이전 007 시리즈에 등장했던 여러 기념품(?)이 등장하므로 '스펙터'로 돌아온 블독 피겨린과 유사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이번 포스팅에서 얘기하려는 건 본드의 데스크가 아니므로 이런 얘기는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자.

자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WHAT IF' 놀이를 잠깐 해보자.

만약 주디 덴치의 M이 '스카이폴'에서 죽지 않았다면? 영화엔 M이 죽은 것처럼 나왔지만 실제로는 살아있다면?

1967년 영화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에서 본드(숀 코네리)는 침대에 피를 흘리고 죽었다 장례식까지 치르고 나서 다시 살아서 돌아온 바 있다.


그런데 M이라고 못한다는 법이 있나 싶다.

여러 테러리스트들이 M의 목숨을 노리는 만큼 영국 정보부가 M이 사망한 것으로 위장해 비밀리에 은퇴시킨 것으로 충분히 설정할 수 있다. M은 평범한 시외의 마을에서 평범한 노인처럼 살지만 24시간 동안 보이지 않는 경호를 받고 있으며, 그녀의 은신처는 본드와 현직 M(랄프 파인즈) 등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것으로 하면 된다.

주디 덴치의 M을 다시 살려서 어디에 쓰려고 그러냐고?

약간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주디 덴치의 M을 살렸다 다시 죽일 생각을 해봤기 때문이다.

기왕 M을 죽일 것이면 영화의 마지막이 아니라 영화의 첫머리에서 죽게 만들면서 본드를 열받게 만드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겠나 생각해봤다.

이런 플롯을 한 번 생각해 보자:

"극비리에 은퇴한 M(주디 덴치)이 영국의 조용한 마을에서 살고 있다. 본드는 시간이 나는대로 꽃을 사들고 은퇴한 M을 찾아간다. M과 본드는 더이상 상관과 부하의 관계가 아니라 모자 지간에 가깝게 발전했다. 그러던 어느날 본드의 아픈 곳을 찾아 공격하려던 스펙터가 M의 생존 사실을 알아내고 그녀를 살해한다. M의 암살을 주도한 스펙터의 멤버는 본드에게 "복수를 하려거든 언제든지 찾아오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M의 죽음으로 분노에 휩싸인 본드가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면서 스스로 죽음의 덫에 걸리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현직 M은 본드가 사망한 M(주디 덴치)과 각별한 사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M의 암살 배후를 캐는 미션에서 본드를 빼려고 한다. 냉정을 잃은 본드가 스펙터가 준비해놓은 함정에 빠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본드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그 미션을 맡겨달라고 요구하지만 현직 M은 들어주지 않는다. 그러자 본드는 휴가를 낸 뒤 홀로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본드가 스펙터의 뒤를 쫓는다는 사실을 눈치챈 M은 비밀리에 본드를 따라가 그를 덮치지만 본드가 이 미션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아차린 M은 그동안 정보부와 수사기관이 수집한 정보를 본드에게 건네주면서 공식적으로 이 미션을 본드에게 맡긴다..."

물론 대단히 새로운 플롯은 아니다. '여왕폐하의 007'과 1989년작 '라이센스 투 킬(Licence to Kill)'을 리믹스한 것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007 시리즈를 보면서 보고 배운 게 리믹스 기술이다 보니...^^

왜 이런 복수 플롯을 생각하게 됐나면, 스펙터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게 '트레이시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소설 '여왕폐하의 007'에서 본드는 트레이시와 결혼하지만 바로 뒤돌아 서서 트레이시가 블로펠드 일당에 살해당한다. 다음 소설 '두 번 산다'에선 트레이시를 잃은 뒤 슬픔에 빠진 본드가 일본 미션을 맡게 되지만 바로 거기서 블로펠드와 마주치게 되면서 블로펠드를 죽인다.

그러나 21세기 제임스 본드 영화에선 이런 플롯을 기대하기 어렵다. 트레이시가 블로펠드 일당에 의해 죽는 씬이 이미 1969년 영화에 나왔기 때문에 007 제작진이 다시 리메이크를 하지 않는 이상 트레이시의 사망을 영화에 다시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007 제작진은 "리메이크는 없다"고 밝힌 바 있으므로 범죄조직 스펙터가 007 시리즈 24탄으로 다시 돌아오더라도 본드의 결혼과 트레이시의 사망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트레이시를 대신해 본드의 복수극을 트리거링할 만한 캐릭터가 없을까 생각해봤다.

물론 본드가 이번엔 다른 이름의 여성과 결혼하는 것으로 설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너무 불성실한 이이디어로 들리므로 그 대신 M으로 바꿔봤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에서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던 M을 잃었다"로 바꿔본 것이다.

복수극을 트리거링할 새로운 캐릭터를 찾는 것과 동시에 한가지 중요한 조건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블로펠드를 죽여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언 플레밍의 소설 시리즈에선 본드가 블로펠드를 죽이지만 영화 시리즈에선 블로펠드가 죽는 씬이 나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스펙터와 블로펠드를 계속해서 007 시리즈의 적으로 등장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본드가 블로펠드를 죽여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므로 블로펠드를 계속 살려둔 것이다.

이번에 다시 돌아오는 21세기 블로펠드도 절대 죽여선 안 된다. 왜냐, 007 제작진이 매번 새로운 적을 찾는 데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펙터와 블로펠드를 다시 007 시리즈에 사용할 수 있게 됐다면 그들을 계속해서 적으로 영화에 등장시킬 생각을 해야 한다. 007 영화 시리즈의 역사가 '007 vs 스펙터' 구도에서 시작했던 만큼 계속해서 단골로 악당 역을 맡아줄 스펙터와 블로펠드가 있어야 순조롭게 굴러가게 돼있다. 더군다나 요즘엔 기초로 삼을 플레밍의 원작소설마저 바닥났으므로 스펙터와 블로펠드는 007 제작진에게 천군만마와 같은 존재다.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 시대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자꾸 남의 영화를 베끼는 이유도 밑천이 다 드러난 007 제작진이 최신 유행하는 것들을 이것 저것 끌어오면서 007 시리즈를 다급하게 리프레쉬하려는 데서 비롯된 문제다. 그러나 007 제작진은 이제 스펙터와 블로펠드를 다시 얻었으므로 더이상 새로운 적을 찾아 헤맬 걱정을 어느 정도 덜었으며, 지금부터는 스펙터를 적으로 삼은 플롯을 구상하는 데 전념할 수 있게 됐다고 할 수 있다. 물론, 007 제작진이 미국산 코믹북 수퍼히어로 영화를 베끼는 현시점에 스펙터와 블로펠드가 그들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것은 007 시리즈가 더욱 코믹북 스타일로 기울지 모른다는 우려를 더 키울 뿐 그리 좋은 소식으로 들리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007 제작진이 스펙터와 블로펠드를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있지 스펙터와 블로펠드 자체는 007 제작진에 절실히 필요한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블로펠드를 영화에서 죽인다는 건 현재로썬 상상하기 어려운 씨나리오다.

위의 플롯에서 M을 죽인 자가 "M의 암살을 주도한 스펙터의 멤버"라고 했을 뿐 블로펠드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스펙터가 저지른 사건인 것은 분명하지만 블로펠드가 직접 가담한 것이 아니라 스펙터의 제 2인자가 직접 주도한 것으로 설정하면서 블로펠드를 살려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스펙터 + 복수' 플롯을 완성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상상해본 스토리일 뿐 '본드24'와는 무관하다. 현재까지 알려진 '스펙터'의 플롯은 주디 덴치의 M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만약 나더러 스펙터를 소재로 한 007 플롯을 만들라고 한다면 위에 쓴 것처럼 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번 'WHAT IF' 놀이는 끝...

댓글 없음 :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