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7일 일요일

'루시', 짧아서 지루하지 않았다는 게 전부

프랑스 영화감독 겸 프로듀서 룩 베송(Luc Besson)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 중 하나는 터프한 액션 히로인이다. 아마도 룩 베송의 1990년 영화 '니키타(La Femme Nikita)' 때문일 것이다. 메인 캐릭터가 사형수에서 비밀 에이전시의 킬러로 변신한다는 '니키타'의 줄거리는 사실 그다지 신선하지 않았다. 그러나 메인 캐릭터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게 포인트였다. 니키타는 지금도 대표적인 여성 히로인 캐릭터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니키타'는 헐리우드에 의해 리메이크되고 TV 시리즈로 제작되는 등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룩 베송은 '니키타'의 뒤를 이을 새로운 액션 히로인을 탄생시키는 데 애를 먹고 있다. 2011년 조 살다나(Joe Saldana) 주연의 여성 어쌔신 영화 '콜롬비아나(Colombiana)'로 액션 히로인 영화에 재도전해봤으나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니키타'에 이은 또 하나의 굵직한 액션 히로인이 탄생하는가 지켜봤지만 별 볼 일 없었다. 비슷했지만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그러더니 2014년 여름 액션 히로인을 주인공으로 한 룩 베송의 새로운 영화가 개봉했다.

제목은 '루씨(Lucy)'. 이번엔 미국 여배우 스칼렛 조핸슨(Scarlett Johansson)이 룩 베송의 액션 히로인 역을 맡았다.

'루시'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평범한 파티걸이던 루시(스칼렛 조핸슨)는 얼떨결에 정체불명의 서류가방을 한국인 갱단에 배달하러 갔다가 붙잡혀 푸른색 크리스탈처럼 생긴 신종 마약을 뱃속에 숨긴 채 유럽으로 마약 운반을 강요당하는 처지가 된다. 그런데 루시의 뱃속에 넣었던 마약 봉지가 터져 마약이 온몸에 퍼지면서 그녀는 일반인과 달리 두뇌 기능을 100%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한마디로, 약발에 수퍼히어로가 된 것이다. 마약 덕분에 초능력을 얻은 루시는 유럽으로 신종 마약을 운반하려는 한국인 갱단 두목 장(최민식)의 마약 밀수작전을 저지하기 위해 '마약과의 전쟁'에 뛰어든다...


그렇다. '루시'는 일종의 수퍼히어로 영화였다. 스파이더맨이 거미에 물려 수퍼파워를 얻었다면 루시는 신종 마약 덕분에 뇌 기능을 100% 사용이 가능해지면서 여러 가지 수퍼파워를 얻게 된 수퍼히어로였다. 뇌의 기능을 소재로 삼은 덕분에 얼핏 보기엔 공상과학물처럼 보였지만 '루시'는 얼떨결에 수퍼파워를 얻게 된 수퍼히어로의 이야기였다.

과연 이번엔 룩 베송의 새로운 액션 히로인이 성공적으로 탄생한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이번에도 아니었다.

일단 스칼렛 조핸슨이 터프걸, 액션 히로인 역에 곧잘 어울리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루시는 조핸슨이 마블의 코믹북 수퍼히어로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액션걸' 이미지를 한 번 더 울궈먹은 것이 전부였을 뿐 오래 기억될 만한 인상적인 캐릭터가 아니었다. 조핸슨의 스타파워를 걷어내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다시피 한 캐릭터였다. 지난 니키타 또한 그다지 신선한 캐릭터가 아니었음에도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이번 루시는 흔한 코믹북 수퍼히어로 짝퉁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영화도 맘에 들지 않았다. '루시'는 영화가 짧아서 지루하지 않았다는 점을 빼곤 맘에 드는 데가 없었다. 그것도 런타임이 1시간 30분이 채 안 되었기 때문에 산만해질 기회가 없었던 덕분이지 재미가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줄거리부터 실망스러웠다. 뇌의 기능에 관한 파트는 어디서 들어본 듯 한 것이 그다지 신선해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좀 더 깊이 있고 그럴 듯 하게 문제를 다뤘더라면 보다 흥미진진했을 수도 있었다. 넌센스 수퍼히어로 쪽 보다 진지해 보이는 SF-스릴러 쪽으로 갔더라면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 '루시'에선 주인공 루시가 얼떨결에 마약으로 얻은 수퍼파워를 뇌의 기능에 갖다붙인 게 전부였다. 모갠 프리맨(Morgan Freeman)이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저명한 교수 역으로 출연해 무게를 실어주려 노력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물론 이런 영화에서 줄거리를 진지하게 논한다는 자체가 넌센스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액션은 어땠을까?

액션은 풍부한 편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밋밋했으며,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씬이 없었다. 다른 액션 스릴러 영화를 통해 이미 여러 차례 본 듯 한 총격전과 자동차 체이스 씬이 전부였을 뿐 별다른 게 없었다. 영화 트레일러를 봤다면 영화를 다 본 것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볼거리가 없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무언가가 벌어졌기 때문에 지루하진 않았으나 스릴이나 익사이팅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유머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유머에 신경을 쓴 것 같았으나 대부분 별 효과가 없었다. 유치하거나 웃기지 않은 유머가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영화 초반에 루시(스칼렛 조핸슨)가 처한 위기 상황을 야생 정글의 동물들에 비유한 것이 코믹해 보였다. 그런 씬이 진지하게 느껴진 것이 아니라 '총알탄 사나이(The Naked Gun)' 수준의 패로디처럼 보였던 것이다. 치타가 가젤을 쫓는 씬에선 '총알탄 사나이 2'에서 러브 씬을 꽃이 활짝 피고 미사일이 발사되는 것으로 은유적으로 묘사했던 것이 생각나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만약 제작진이 '총알탄 사나이 2'의 그 씬을 연상케 하면서 웃음을 주려고 한 것이었다면 박수를 쳐주고 싶다. 하지만 왠지 그걸 의도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루시'는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 영화였다. 적어도 지루하진 않았으므로 1시간 반동안 뇌의 기능을 완전히 꺼놓고 아무 생각없이 시간을 보내는 용도로는 별 무리가 없어 보였지만, 시간을 잘 보냈다는 만족감이 부족했다. 영화가 짧았고 도중에 늘어지는 데가 없었기 때문에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아주 흥미진진한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영화에 큰 기대를 걸진 않았어도 혹시 오랜 만에 나온 화끈하고 익사이팅한 액션영화가 되지 않을까 했었는데 '루시'는 스칼렛 조핸슨이 없었더라면 큰일날 뻔했던 영화였다. 

댓글 2개 :

  1. 최민식의 비중과 연기는 어떻던가요. 원래 이런거 신경안쓰는데 그냥 괜시리 궁금해지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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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어 대사로 건달 스타일 두목 역을 맡았는데 전형적인 아시안 악당 캐릭터 같았습니다.
      과장이 좀 심하고 만화책 캐릭터 같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습니다.
      비중은... 영화 중반 이후부턴 나올 일 없는 줄 알았을 정도로 형식적인 악당 두목이었습니다.
      아주 없으면 너무 싱거우니까 계속 나오는 정도? '루시'의 등장 캐릭터들이 형편없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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