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15일 목요일

목욕과 섹스에 묻혀버린 '리더'

1950년대.

간염에 걸린 15세 독일 소년 마이클 버그(데이빗 크로스)가 길에서 우연히 만난 30대 중반의 하나 슈미츠(케이트 윈슬렛)라는 여성의 도움을 받는다. 며칠 뒤 마이클은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하나의 집을 찾아가고, 얼떨결에 연인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그렇다. 15세 소년과 30대 중반의 여성이 함께 목욕과 섹스를 즐기는 연인이 된 것이다.


▲이런 사이가 됐단 말이다...

그런데 하나에게 이상한 '버릇'이 하나 있었다; 마이클에게 자꾸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것. 하나는 언제나 직접 읽으려 하지 않고 마이클더러 읽어달라고 한다.

그렇다. 영계 부려먹는 법도 가지가지다.


▲목욕중에도 읽고...


▲침대에서도 읽고... 영계 목 쉰다, 목 쉬어ㅠㅠ

그러던 어느날, 하나가 마이클에게 작별인사도 하지 않고 갑자기 사라진다.

마이클과 하나는 몇 년이 지난 후 나치 전범재판이 진행중인 법원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마이클은 법대생이고 하나는 전범으로 기소된 상태라는 것.

하나가 나치였단 말인가...?


▲법정에 선...앉은... 하나 슈미츠

독일 작가 번하드 슐링크(Bernhard Schlink)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리더(The Reader)'는 전후세대인 마이클이 전쟁세대인 하나 슈미츠와 사랑에 빠지면서 2차대전 당시 나치가 저지른 전쟁범죄와 만행을 되돌아 보게 된다는 내용의 드라마다.

하지만 원작보다 나은 영화는 역시 나올 수 없는 것일까?

원작에 충실하게 영화화 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에 분명히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부분들이 이상하게도 모두 빠졌다. 몇 개 예를 들어보자면, 마이클 아버지의 서재에 꽂혀있는 책들을 둘러보는 하나의 모습, 마이클이 백화점에서 훔친 드레스를 입고 소녀처럼 기뻐하는 하나의 모습, 메모를 남겼는데도 마이클 혼자서 떠난 것으로 오해한 하나가 마이클을 가죽 허리띠로 때리는 부분 등이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소설에서 'It's one of the pictures of Hanna that has stayed with me.'라고 되어있는 장면(들)은 영화로 옮기면 멋질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스크린라이터는 이런 부분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영화 제작진이 신경 쓴 것은 무엇일까?

전후세대 독일인들이 느끼는 나치가 저지른 온갖 만행과 전쟁범죄에 대한 죄의식과 수치감?

영화에 나오긴 하지만 아무래도 이것도 아니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뭐냐고?

목욕과 섹스, 또 목욕과 섹스, 그리고 또 목욕과 섹스...

소설에서도 하나와 마이클의 '목욕과 섹스 스토리' 파트가 책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다. 15세 소년과 36세의 여성이 사귄다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얘기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마이클과 하나의 사랑'보다 '마이클과 하나의 목욕과 섹스'가 더 기억에 남는다면 약간 문제가 있다. 10대 소년인 독일 영화배우 데이빗 크로스와 30대 중반의 영국배우 케이트 윈슬렛의 올누드 섹스씬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려는 얇팍한 수법을 쓴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리더'가 러브스토리라는 것을 잊은 건 아니다. 따라서 섹스씬이 어느 정도 나오는 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리더'에서는 영화의 주제가 '목욕'과 '섹스'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의미해 보이는 목욕, 섹스, 노출씬이 지루하게 반복된다. 물론, 일반 에로영화처럼 시도 때도 없이 꺼내놓는 정도는 아니지만 전혀 에로틱하지도, 로맨틱하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 만큼은 나온다.

하지만 러브스토리가 전부는 아니다. 전범재판을 거쳐 영화의 마지막에 가까워지면서 멜로드라마적인 분위기가 살아난다. 마이클이 중년이 되어서도 과거를 추억하며 노인으로 변한 하나에게 책을 읽어주는 장면 등은 원작에 나오는 그대로 였다. 그런데 원작소설만큼 느껴지는 게 없었다. 어렸을 적 마이클을 연기한 독일배우 데이빗 크로스, 중년의 마이클을 연기한 레이프 파인즈(Ralph Fiennes), 30대부터 60대 노인까지 연기한 케이트 윈슬렛, 그 밖의 출연배우들 모두 훌륭한 연기를 보였는데도 '찡하다'고 할만 한 게 없었다.


▲중년의 마이클을 연기한 레이프 파인즈

왜 일까?

나치와 전범 이야기가 나오지만 결국엔 '이뤄질 수 없는 슬픈 사랑 이야기'라는 전형적인 멜로드라마 포뮬라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원작의 포텐셜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리더'는 이보다 훨씬 멋진 영화가 될 수 있었다. 잦은 노출씬으로 영화의 포인트를 흐리지 않고 마이클의 어렸을 적 사랑 이야기를 잔잔하게 회상하는 방식이었더라면 나았을 것이다. 목욕과 섹스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문제될 게 없어도 이것 이외의 추억거리들이 풍부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소설에서 'It's one of the pictures of Hanna that has stayed with me.'라고 되어있는 장면들이 영화로 옮겨지지 않은 게 아쉬운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마이클의 '기억의 사진첩'에 남아있는 장면들을 제대로 영화로 옮겼더라면 멜로드라마적인 분위기도 하나가 마이클을 두고 떠나는 데서부터 제대로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씩 따져보면 아쉬운 점이 한 둘이 아니다.

그래도 'NOT-TOO-BAD'이었다. 영화버전 '리더'는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평균미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리더'를 제대로 보고 싶다면 영화보다는 소설을 권하고 싶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니까 생각나는 노래가 하나 있었다. 물론, 오리지날 사운드트랙 수록곡은 아니다.

어떤 노래냐고?

"You're young. You're free. Why don't you sleep with me~!"

왠지 가사가 와 닿지 않수?


댓글 1개 :

  1. 이렇게도 생각할수있겠군요....좋은 평 감사합니다.

    저의 경우는 이 작품을 통해 여러가지를 본것같습니다. 사실 나치의 얘기는 자그마한 소품일뿐 그리고 이 영화는 멜로를 가장한 인간사가 맞다고 생각이 들더군요.
    초반에는 그냥그런 멜로물이엇다가 중반이후 나치가 등장하면서 정말 이영화의 내용이 보이더군요. 사람과의 관계 주인공 여자의 자존심 그리고 이기심, 등등 많은 내용을 잔잔히 연기자들의 눈빛으로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굉장히 충격적이지도않은 작품인데 그것을 잔잔히 연기자들이 이끌어가게 하는 감독의 능력이 좋와 보엿습니다.
    보고나면 뭔가 씁쓸한 그런기분이 생기더군요....끝까지 자신을 위해 남자에게 상처주는 여자 그리고 반대로 여자에게 도움을 주지못해서 후회하는 남자....그리고 용서...좋은 영화 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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